진학

서론

석사과정 졸업을 앞두고, 2025년부터 무엇을 하며 지내야할까 고민이 많았다. 석사 이후의 진로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는데, 하나는 취업이고, 다른 하나는 (또)진학이다. 주변의 석사 졸업 대기자(?)를 보면 대부분 진학을 선택하긴 하더라. 사실 취업을 하더라도 석사연구원으로는 연차가 쌓이더라도 오를 수 있는 직급에 한계가 명확하다고 한다. 그래서 다시 돌아와서 박사과정을 밟는 분들이 많다.

늦었다고 할 때가 제일 빠른 때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모든 것에는 최적의 때가 있다는 말도 있다. 공부나 연구에 있어서는 가장 뇌가 말랑말랑할 20대에서 30대 초반이 최적의 때라고 믿는다. 고로 나는 진학을 결심했고, 박사과정 진학 준비를 시작했다.

나는 왜 국(내)박(사과정)을 선택했는가?

2월 졸업을 위해선 사실 10월 중순에서 11월 사이가 정말 바쁘다. 박사과정 진학도 알아봐야 하지만, 그것 이외에도 본심사 준비하고, 투고 준비하고, 수업도 들으면서 지연 없이 일을 해내야 한다.

같은 연구실 쓰는 분들 중에 유학을 준비하는 분들이 정말 많은데, 유학은 정말 국내 진학보다도 준비할 것이 38배 정도 더 많은 느낌이다. 학교마다 요하는 사항이 다 다른 것은 애교고, 학교 순위대로 합격할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니다보니 지원할 학교를 선택하는 단계에서부터 진이 많이 빠지는 듯하다.

나는 해외 생활을 해보았지만 그렇게 나에게 맞지도 않고, 무엇보다 두 가지 크리티컬한 이유로 해외 유학을 깔끔하게 포기했다.

  1. 나의 학부 졸업학점 (3.99)로는 미국 Top 30 대학 진학이 대단히 어려울 것이다. Top 30 진학 실패 시 교수직 임용은 어려울 것인데, 6년에서 7년의 시간을 투자해서 교수 임용을 보장받을 수 없다면 너무 큰 도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2. 역시 6년에서 7년의 기간을 해외에서 생활해야 하는데, 학비야 Scholarship & Stipend 등으로 보강한다 쳐도 생활비 면에서는 생 돈이 들어가기 마련이다. 과연 고된 해외생활 + 생활비 걱정을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해외 생활이 적성에 정말 맞거나, 자금이 정말 넉넉하다면 당연히 해외 유학이 향후 진로에 더 낫다. 괜히 현직 교수님들이나 박사님들이 해외 유학하신 게 아니다.

나는 최근에 대두되는 데이터와 머신러닝의 중요성을 연구하면서 정말 뼈저리게 느꼈기에, 데이터사이언스 분야로 전향(?)해서 진학을 준비했다. 당연히 사회과학계 ➡️ 이공계로 전공을 전환하는 것이다보니 그에 상응하는 Challenge가 분명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고, 그래서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빠른 시점에 박사과정 컨택을 시도했다.

우리나라 데이터사이언스 일반대학원이 많지는 않지만, 크게 세 종류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방법론은 물론이고 사회과학 도메인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종합적인 데이터사이언스 대학원이고, 둘째는 방법론에 더 집중된 연구 에너지를 쏟는 대학원, 셋째는 소셜 데이터사이언스와 데이터 시각화에 방점을 두는 대학원이다. 나는 프로그래밍 heavy한 곳보다는 실증적으로 데이터를 활용해서 뭇 인간을 이롭게 하는 것에 관심이 있었고, 자연스럽게 종합적으로 다양한 학제 간 연구를 할 여건이 되는 학교를 선택하게 되었다. (여름방학을 너무 바쁘게 보내다보니 몇 개의 지원기간을 놓친 것도 한 몫 했다 ㅎㅅㅎ)

컨택과 입시

이공계 대학원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한다면 바로 Lab 중심의 생활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가 몸담고 있는 문과 계열 대학원은 그냥 "공부방"에 더 가까운 느낌인데, 이과 대학원은 대부분 랩에서 인건비와 생활비를 주는 대신 연구과제를 수행하고, 한 명의 교수님 산하에 수많은 대학원생이 연구를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하는, 일종의 회사 구조를 따른다는 점이 몹시 다르다.

고로 교수님과의 핏이 중요하고, 이를 검증하기 위한 컨택이 필수적이다.

사실 서울대학교 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은 일반대학원 전환이 최근에 이루어져 상대적으로 입시 방법이 매 학기 달라진다. 나는 이쪽 분야에 관심이 생긴 이래로 24년 전기 입시과정부터 쭉 follow-up을 하고 있었는데, 23년 전, 후기, 24년 전기에는 컨택이 금지였다가, 24년 후기에 박사과정과 석박통합과정에 컨택 과정을 필수로 담았다가, 25년 전기에는 박사과정만 컨택이 필수인 그런 방식으로 바뀌었다.

나는 6월 말에 최초 컨택을 시도했다. 사실 모집요강도 안 뜬 시점이었지만, 박사과정의 특성상 컨택 여부는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다. 다행히 최초 이메일 컨택에 답신이 왔고, 화상회의를 통해 첫 컨택 면담을 마쳤다. 마침 컨택한 교수님께서 경제학 도메인을 가진 사람을 좋게 봐주셨고, 내가 지원할 학기에 박사과정 T/O가 있다고 안내해주셨다. 다만, 서류전형과 면접전형으로 이루어진 입시는 자력으로 통과를 해야 한다고 알려주셨다.

7월 중순에는 연구실에 방문해서 세미나 진행하는 것을 참관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다. 서울대학교 942동으로 찾아가서 랩 세미나를 참관했고, 역시 대학원은 어딜 가나 느낌이 비슷하구나 하고 느꼈다. 그 이후에 본격적인 입시가 시작되자, 박사과정 지원 시 필요한 서류도 안내되었다.

이번 25년 전기 서울대학교 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의 박사과정 지원 시 필요 서류는 크게 세 가지였다.

  • 학사 및 석사과정 성적증명서

  • CV (자유양식, 2페이지 이내)

  • 지도교수 신청서 (컨택한 교수님 서명 필요)

이 세 가지 서류와 온라인으로 첨부해 제출하는 자기소개 및 연구계획서만 검토해서 1차 서류 전형이 이루어지고, 그 다음 2차 면접 전형이 있는 형태였다.

25년 전기 모집에 관해서

이번 모집 정원은 (석) 14명, (석박) 35명, (박) 23명이다. 대학원생은 흔히 시간 빌 게이츠라고도 부르는만큼 남는 시간이 많다. 동시에, 서울대학교는 입시 과정을 꽤 투명하게 공개하는 편이다. 1차와 2차 합격자를 명단으로 공개해버리는 용감함을 보여준다.

미천한 대학원생이지만 가용한 정보를 이용해서 대략적인 1차(서류 전형) 합격비율과 2차(면접 전형) 합격비율을 산출했다. 최초 지원자는 최후번째 수험번호를 통해 유추, 서류 합격자는 공지사항에 게시된 면접 대상자로 설정, 면접 합격자는 공지사항에 게시된 심층구술면접 대상자로 한정하였다.

[모집정원 - 지원 - 면접대상 - 심층구술면접대상]

석사과정 : 14 - 66 - 26 - 15

석박통합과정 : 35 - 93 - 54 - 38

박사과정 : 23 - 14 - 14 - N/A

석사과정 및 석박통합과정의 경우에는 정원에 비해 지원자 수가 더 많았고, 박사과정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박사과정은 심충구술면접 대상이 아니므로 해당 수는 N/A 처리하였다. 사실 11월 1일 공지에는 지원한 14명 모두 심층구술면접대상자로 안내가 되었으나, 입학처 문의 결과 오류라고 말씀해주셨다.

서류 평가는 사실 지원자의 입장에서는 알 수가 없는 블랙박스이다. 면접 역시도 평가 과정은 블랙박스이지만, 문제를 복기할 수 있다는 점과 그 문제에는 보통 명확한 정답이 존재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상대적으로 더 투명한 전형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면접 전형은 25분 문제풀이(종이에) + 10분 면접으로 진행되었다. 43-2동에 있는 큰 대기실에서 모든 인원이 함께 대기하며, 여기서 순서에 따라 5명씩 진행하게 된다. 문제는 크게 데이터사이언스 방법론, 선형대수, 코딩 문제로 구성이 되어있었고, 각 문제는 2~4개의 꼬리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여기서 두 개 문제를 골라서 주어진 종이에 자신이 생각하는 답을 열심히 쓰고, 이를 설명할 수 있도록 생각하면 된다.

25분의 문제풀이 시간이 끝나면 바로 위층의 세미나실로 안내받는데, 여기서 2(면접관):1(면접자) 구조로 면접을 보게 된다. 면접 시간은 10분이며, 정말 칼같이 시간이 엄수된다. 10분이 지나면 내가 말을 하는 도중에도 다음 번 지원자가 들어와버리므로, 시간 분배를 정말 잘 해야한다.

나는 첫 번째 빠따를 맞았는데, 그러다보니 사실 좀 어수선한 분위기가 없지 않았다. 다시 복기해보니 심지어 선형대수 문제의 한 꼬리문제를 잘 못 풀이한 것도 발견했다. 이 때 떨어진 줄 알았지..

아차, 그리고 정말 애매한게 이른 순서에 배정이 되면 대기실에서 버리는 시간 별로 없이 바로 면접 보고 집에 가면 되는데, 순서가 뒤에 있으면 하루종일 대기실에서 마음을 졸여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대기실 입실 시간 (12:10 ~ 12:40) 지나면 다과나 화장실 이용도 자유롭지 못하고.. 영 아쉬운 처리였다.

물론 시험의 보안을 위해서라면 그럴 수는 있지만.. 응시자 입장에서 조금 더 고려해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면접 전형이었다. 앞서 언급했던 문제는 더 자세히 언급하기 어렵다. 최대한 간략하게만 복기해보자면 :

[Part 1 : 데이터사이언스 개념]

  1. Induction Bias가 무엇인지 서술

  2. Linear Regression에서 상관관계 추정 시 접근법

  3. 의료 이미지 데이터를 통해 질병을 예측하고 싶을 때의 접근법

  4. 날씨 데이터를 통해 내일 날씨를 예측하고 싶을 때의 접근법

[Part 2 : 선형대수]

[latex]\centering A = \begin{bmatrix} 1 & 0 & 0 \\ 1 & 1 & 0 \\ 0 & 1 & 1 \end{bmatrix}[/latex]

  1. 선형 독립 여부

  2. Ax=0 계에서의 선형 독립의 의미

  3. Basis 존재 여부

[Part 3 : 코딩]

  1. 박람회에서 가장 많은 세션에 참가하기 위한 알고리즘의 Pseudo Code 작성

  2. 위 알고리즘의 시간복잡도를 계산

위와 같은 형태로 문제가 구성되었다. 완벽한 복기가 아니므로 실제로 이 문제가 나왔다는 것이 아니라, 대략적으로 이런 형태로 나왔다고 보면 되겠다. 사실 문제 풀기에도 시간이 넉넉하진 않아서 다른 문제들을 외울 수도 없었다. 문제는 형식이 매 학기 달라지는 것으로 안다. 작년만 하더라도 두 문제 중 한 문제를 풀이하는 것이었고, 수학문제가 있는 학기와 없는 학기가 달랐다고 한다.

아 그리고 대기실에서 먹을 수 있는 다과는 맛있다. 피칸파이와 브라우니는 많이 달긴 하지만 긴장을 많이 풀어주므로 추천한다.

기다림

박사과정은 면접 전형이 입시의 끝을 의미하지만, 석사과정과 석박통합과정은 이후 연구실 탐색 및 심층구술면접이 예정되어 있다. 11월 1일에 면접을 보고, 2일에 바로 심층구술면접 대상자가 공지되었다.

입학설명회에서도 들었지만 심층구술면접 대상자는 T/O를 고려하여 선발한다고 한다. 고로 교수님들마다 생각해두신 T/O는 다르겠지만, 사실상 이 단계에 이르러서는 최종 합격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알고 있다.

전형일정 상 이해하지 못 하는 부분은 아니지만, 박사과정은 1일 면접 이후에 최종 결과 발표까지 너무 긴 시간을 축내는 느낌이 없지 않다. 아쉬운 쪽은 내 쪽이니까 받아들이는 것이 당연할지는 몰라도.

결과 발표

결과 발표일은 오늘인 21일이다. 다른 학교들과 동시에 전형을 진행하면서, 혼자 제일 늦게 발표하는 것이 나름 서울대다 이건가 싶다. 심지어 발표 시각도 18시이므로 하루종일 마음을 졸이게 만드는 그런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인간은 포기를 모르는 동물이지. R 코드로 입학공지의 맨 첫 글이 바뀔 때 알림이 오도록 설정해두고 (수동 RSS ㅋㅋ) 할 일을 하고 있었는데, 별안간 17시에 공지가 바뀌고 합격자 공지가 올라왔다.

우렁찬 2025학번 새내기!

다행히 나는 (면접에 몹시 절고 심지어 한 문제는 오답을 내버렸지만) 붙었다. 소식을 각지에 알리고 가벼운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다. 이제 남은 일은 여기서 석사학위를 무사히 취득하는 것! 다음 주가 본심사인데 잘 풀리길 바라야겠다.

꼭 필요할 때만 찾아도 신들은 충분히 마음이 여유로우실테니 나를 잘 봐주시지 않을까 우하하!